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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한국의 과자 - 한과

by 홍나인 2024. 3. 4.

 한과는 서양의 과자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우리나라의 전통 과자는 과정류나 과줄이라고 불렀으며, 옛날에는 생과일과 구분하기 위해 과일을 말리는 등의 가공을 하여 과일의 대용품이라는 의미로 조과라고도 불렀습니다. 한과의 종류에는 유밀과, 다식, 정과, 과 편, 엿강정 등이 있으며, 농업이 발달하여 곡물의 생산량이 많았고, 불교가 확산하여 육류를 피하게 된 통일신라 시대나 고려시대에는 한과는 혼례나 제례 등의 상차림에는 필수였습니다.

 

 이러한 한과는 삼국 통일 이후 다과상이나 다정 모임 등이 생기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고, 고려시대에는 각 사찰이나 마을에서 임금님에게 유밀과를 진상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왕실과 양반가의 기호식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임금님의 수라상이나 의례 상차림에 반드시 올라가는 중요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한과는 고려시대 후기 때 편찬된 삼국유사 중 수로 왕조 부분에서 수로왕 묘의 제수에 과가 쓰였다는 내용으로 처음 나오는데, 제수에 쓰이는 과는 원래 일반 과일이지만 추운 겨울이나 과일이 나오지 않는 계절에는 곡분으로 과일 모양을 만들고 과수의 가지를 꽂아서 제수로 썼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1763년에 작성된 성호사설이라는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과는 삼국유사의 김유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신라의 김유신은 고구려의 첩자인 백석에 의해 고구려로 납치될 뻔했는데 이때 세 호국신이 여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김유신에게 과자를 대접하면서 백석이라는 자가 첩자라는 사실을 알려줘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문왕의 폐백 품목으로 쌀과 술, 장, 꿀, 기름, 메주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쌀과 꿀, 기름 등은 과정류를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이기 때문에 이 당시에는 이미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통일신라 시대부터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하였고 의식에 따른 다과상인 다정 모임 등이 발달하였는데, 과정류는 차와 어울리는 음식이기 때문에 삼국시대에는 이미 한과를 만들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한과의 종류 중에서 유밀과가 인기가 있었는데, 1157년 의종 임금이 사찰에서 유밀과를 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기록을 보아 차 마시는 문화를 발전시킨 곳인 사찰에서는 차와 곁들어 먹는 과자도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차 마시는 문화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퍼지게 되면서 유밀과도 차와 함께 백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고려시대의 국가 행사인 연등회나 팔관회, 임금님의 탄생일 등에서는 유밀과를 중심으로 다과상이 차려졌습니다. 또한 유밀과는 연회 이외에 제사나 왕족, 귀족, 사원의 행사에 항상 고임 상으로 올려졌습니다.

 

 고려의 유밀과는 굉장히 성행하였는데, 1296년 충렬왕 때 원나라의 세자 결혼식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왕이 유밀과를 가져갔는데 원나라 사람들이 유밀과를 맛보고는 크게 격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의 유밀과는 원나라에 큰 인기를 얻었고, 원나라에서 고려의 유밀과를 고려 병이라 불렀으며, 고려 병은 약과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곡물, 기름, 꿀 등의 귀한 재료로 만드는 유밀과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자 고려사라는 문헌에서는 1192년 명종 때 유밀과의 사용을 금지하고 유밀과의 대체품으로 나무 열매를 사용하게 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1353년 공민왕 때도 유밀과의 사용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규모의 연회에서 다식이 쓰였지만, 유밀과만큼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 과정류는 의례 때 사용하거나 기호식품으로 이용되었으며, 왕실이나 양반 가문에서 크게 성행하여 연회 상차림이나 세찬 등에 반드시 쓰였습니다. 조선시대 임금님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과일과 강정, 정과, 조란, 강과, 당, 병 등의 여섯 가지 종류의 과자를 올렸으며, 명나라 사신을 대접할 때 약과, 다식, 튀기는 과자를 상에 올렸습니다.

 

 과정류 중에서도 유밀과나 강정류는 궁중이나 양반 가문에서 일반적으로 먹었고, 잔치 상차림에는 유밀과와 강정류를 높이 고였으며, 과자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과 그 과자를 잘 고이는 사람이 초빙되어 담당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유밀과와 강정류는 높은 계급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크게 성행하였으며, 혼례나 회갑, 제사, 설날에는 반드시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도 고려시대처럼 과정류가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성행하자 금지령을 내렸는데, 조선시대의 종합 법전인 대전회통에서는 "혼인, 제향을 제외한 곳에 조과를 사용한 사람은 곤장을 맞도록 규정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 한과는 1900년대 서양 식생활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서양과자에 밀리게 되었고, 복잡하고 만들기 어려운 전통 한과 대신 밀가루, 설탕, 유제품으로 만든 과자류가 발달하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과는 명절이나 제사, 결혼식, 생일, 다양한 경사 일에 선물로 주고받으면서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고,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인식과 SNS의 발달, 한국 문화의 세계화 등으로 다양한 퓨전 한과가 생겨나고 해외에 알려지게 되면서 전통 한과의 관심도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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