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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한국의 주식류 - 국수 (1)

by 홍나인 2024. 1. 28.

 

 국수는 밀가루나 메밀, 감자 등의 가루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칼로 썰거나 국수틀로 가늘게 뽑아낸 것, 또는 그 면을 끓는 물에 넣고 삶아 양념에 비벼 먹거나 국물에 말아 먹는 음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국수의 모습이 길게 이어진 것처럼 경사스러운 일, 추모하는 의미가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뜻으로 결혼이나 생일, 회갑 등의 잔칫상과 조상을 기리는 제사상에 국수를 올렸으며, 국수는 우리나라의 통과의례 음식에서 빠지지 않고 항상 올라가는 음식이었습니다.

- 국수의 역사

 국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먹는 요리이며 다른 말로 면이라고도 한데, 제조하는 방법이나 조리 방법이 나름 간단하기 때문에 빵보다 역사가 깊습니다. 국수는 아시아 지역에서 기원전 6,000년~5,000년경부터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최근 중국에서 4,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는 가장 오래된 국수가 발견되었으며, 면의 형태를 보아서는 그 당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비벼서 면을 뽑은 것으로 보입니다.

 국수를 만들기 위한 밀은 기원전 7,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던 야생 밀이 기원전 1~2세기경 서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여러 가지 문물들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중국으로 들어온 밀을 이용하여 중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수제비 형태의 면을 만들어 먹다 중국 후한 때부터 길이가 길고 가는 형태의 국수를 만들어 먹었으며, 시간이 흘러 5~6세기에는 전병이나 단자와 비슷한 국수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당시에는 밀가루를 면이라 불렀고, 면으로 만든 것은 병이라 불렀는데, 구운 것은 소 병, 기름에 튀긴 것을 유병, 국물에 삶은 것을 탕 병이라 불러 국수 또한 병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 다르게 병은 쌀로 만든 떡을 뜻했고, 국수를 면이라 불렀으며, 삶은 면을 물에 헹궈 건져 올린다는 뜻으로 국수라고 칭하였습니다.

 국수는 중국 송나라 때 우리나라로 만드는 방법이 전해졌는데, 우리나라에서 국수를 만들어 먹은 것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부터로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한 기록으로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국수는 고려시대에 와서야 여러 문헌에서 그 단어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먼저 고려사에서는 국수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국수를 만들어 판매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 후 고려시대 말의 노걸대에서는 "우리 고려인은 녹말가루로 만든 면을 먹는 습관이 있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 밀가루는 일상식으로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귀해 귀족들의 행사인 결혼식이나 회갑연, 제례 등의 특별한 행사에만 먹는 음식이었으며, 결혼식 때 국수를 먹는 풍습도 이때 생겼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밀이 잘 재배되지 않아 밀이 굉장히 귀했고, 가루로 만든 음식도 메밀이나 녹말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훨씬 많았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도경과 다른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 화북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밀가루의 값이 굉장히 비싸 성례 때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밀이 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밖의 문헌에서는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드는 것이나 우리는 메밀로 가루를 내서 국수를 만든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어 중국과는 다르게 밀가루 외 다른 재료로도 국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국수 요리는 발전하였지만, 이때에도 국수는 주로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로 만들었으며, 메밀가루 다음으로 밀가루와 녹두 가루 등이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국수를 만들 때 부재료로는 수수나 물쑥, 닭고기나 꿩, 달걀 등을 이용했고, 국물은 장국, 꿩이나 닭고기 국물, 참깨 국, 오미잣국 등을 이용했습니다.

 또한 지역에 따라 발달한 국수가 달랐는데, 북쪽 지역은 메밀이 많이 생산되어 메밀을 이용한 국수, 냉면이 발달했고, 남쪽은 밀가루를 이용한 칼국수가 발달했습니다.

 조선시대 때 국수에 대한 기록은 음식디미방, 증보산림경제 등의 문헌에 총 50여종의 국수가 기록되었고, 조선시대 문헌 중 음식디미방과 그 외 문헌에서는 바가지에 구멍을 뚫어 국수를 뽑아 만드는 방법이 나오며, 증보산림경제나 임원십육지에서는 국수를 만드는 전용 틀로 국수를 뽑아 만드는 방법이 나옵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는 국수틀을 이용하여 국수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국수를 뽑는 전용 틀로 국수를 만들어 사리를 지은 후 채반에 담아 판매하는 국수 가게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예를 중요하게 여겨 이에 따라 의례 음식이 많이 발달했는데, 음식의 종류 중에서도 면의 이용은 꽤 다양한 편이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밀가루는 매우 귀한 식재료였기 때문에 밀 대신 메밀을 이용한 국수가 많이 발달하였습니다.

 진찬의궤나 진연의궤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 때의 연회 음식과 준비 절차를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는 국수장국에 대한 내용이 20여 차례 기록되어 있으며, 대부분 메밀을 이용한 국수가 나옵니다.

 1900년대에 등장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국수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국수를 익힐 때는 차가운 물을 많이 쓰고 익혀 낼 때도 차가운 물에 담가 뜨거운 기운이 다 빠진 후 건져내어 초, 장, 기름, 마늘, 부추 등의 양념에 섞어 다시 국에 말면 맛이 굉장히 좋다"라는 내용과 "국수는 메밀의 속껍질이 조금 들어있어야 맛있고 자양에도 좋으니, 시골에서 만드는 국수가 빛깔은 검으나 맛이 좋다"라고 하여 국수 만드는 방법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국수는 조반이나 점심, 온갖 잔치에서 안 쓰는 데가 없으니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누구를 대접하든 국수가 밥보다 낫다. 국수에는 편육 한 접시라도 놓으니 대접 중에 낫다"라며 국수의 쓰임에 대해 칭찬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국수를 많이 먹으면 풍이 동해 임산부는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다”라고 먹는 이에 따른 주의점도 기록하였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국수 [noodle, 麵]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국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수장국, 면신선로, 어복쟁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 가지 1, 초판 1998, 10쇄 2011., 한복진, 한복려, 황혜성)

(한국 조리, 파워 북, 2021.02.27., 손정우 외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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